‘선악과를 먹으면 지혜를 얻게 된다’
선악과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금단의 열매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혜의 나무다.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만든 하느님은 아담에게 이를 따먹으면 죽는다고 경고했지만, 아담은 하와의 유혹에 넘어가 이를 따먹게 된다. 하느님은 왜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했을까? 하느님의 지혜와 은총 아래 있던 인간이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는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은 신에게서 벗어나 독립적 판단자가 됨을 의미한다. 금기를 어기고 맛본 유혹의 단맛은 신이 만들어 놓은 이상적 상태에서 벗어나 근본과의 관계 단절을 일으키고, 신을 거역한 ‘죄’가 되는 것이다. ​​​​​​​

이미지 출처 : SM Entertainment

이러한 배경을 가진 선악과는 태민의 이번 신보[Guilty]에서도 등장한다. 무화과를 베어 물려고 하는 앨범 커버 사진이나 티저 이미지로 공개된 사진 속 포도, 그리고 과일을 베어 물어 단맛을 보는 연출까지 모두 선악과를 가리키고 있다. 천주교에서 선과 악은 이분의 존재가 아닌 선의 부재에 악이 따르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소년이 악을 부른 순간이다. ​​​​​​​
‘두 명의 태민과 자동차’ – 이전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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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lty’를 이해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는데, 먼저 태민의 세계관에는 두 명의 태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괴도’를 통해 탄생한 새로운 태민은 ‘Press Your Number’에서 기존 태민의 무의식에 침범하기 시작하더니 주도권을 가지기 위해 기존 태민을 유혹하고 동화시킨다. (‘WANT’와 ‘이데아’) 이 두 자아의 충돌은 빨강과 파랑의 대비로 보이는데, 무의식 속 새로운 태민에게는 빨간빛이, 혼란스러워하는 기존의 태민에게는 늘 파란빛이 비친다. 이번 앨범에서도 마찬가지. 태민의 뒤에 보이는 나무는 빨강과 파랑이 뒤섞여 있고, 파란 배경의 앞에 있는 태민에게 붉은빛이 비치고 있다.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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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태민의 ‘Press Your Number’부터 ‘Guilty’까지 모든 뮤직비디오에는 자동차가 등장한다. 자동차는 운전자의 의지와 판단으로 움직이는 것, 즉 운전자가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물체라고 볼 수 있다. 이 점을 고려하며 태민의 세계관을 들여다보면, 두 자아는 자동차, 그러니까 본체 안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충돌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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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 앨범이었던 ‘Advice’에서 자동차를 박살 낸 태민은 붉은 공간(무의식)에서 깨어난 후 악으로 보이는 검은 태민으로 바뀐다. 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연상시키는 엔딩 포즈와 그 뒤로 넘어져 있는 자동차 씬을 통해 우리는 무의식의 태민, 즉 ‘악’의 태민이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
'선과 악 갈등의 절정'
‘Guilty’에서 선과 악은 의상과 더불어 눈빛과 행동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절 VERSE에서 흰색 민소매를 입은 태민은 텅 빈 눈으로 힘없이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이지만, 2절 VERSE와 함께 등장하는 회색 후드를 착용한 태민은 또렷한 눈동자로 직접 악의 목소리를 속삭이는 주도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 순간도 나를 더 바라고 있잖아’, ‘넌 내 안에 갇힌걸’이라는 가사에서도 악의 태민이 다른 태민을 유혹하고 있음을, 자신의 세계에 가두려고 함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태민은 단지 주도권을 잡은 게 아니다. 악의 태민은 왕관을 쓰고 주도권으로 여겨지던 자동차 위에 올라서 있다. 선악과를 먹으면 지혜를 얻게 되어 하느님과 같은 존재가 된다고 한 에덴의 뱀 말처럼 악의 태민이 주도권 위의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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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서사가 절정에 다다르며 악이 지배한 무의식에서 벗어나려는 태민의 선한 자아도 연출된다. 트레일러와 뮤직비디오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호흡기, 회색 옷이 입혀진 소년이 흰색 옷을 착용한 이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있는 씬, 그리고 무의식에서 깨고자 스스로 다리에 상처를 내는 행동들은 이 세계에서 깨어나려는 발버둥이라고 보인다. 이러한 몸부림이 먹힌 듯 호흡기를 들이마신 후 태민의 눈동자는 각성한 듯 또렷해지고,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악의 태민이 밟고 서 있던 자동차에 불을 지른다. 태민의 선한 자아가 깨어난 것일까? 마지막 코러스의 군무 장면을 보라. 태민은 악의 태민과 같은 의상이지만, 왕관이 없고 불타는 자동차를 뒤로 한 채 바닥에서 춤을 추고 있다. ​​​​​​​
‘대중성과 매니악의 경계선’
데뷔 앨범 ‘괴도’부터 ‘Guilty’까지의 짧지 않은 여정 중 태민은 한 번도 본인의 색을 잃은 적 없었다. 호불호가 나뉠 여지가 많은 컨셉추얼한 비주얼과 음악임에도 태민만의 중성적이고 퇴폐적인, 섹시한 무드는 팬덤을 넘어 대중을 사로잡았고, ‘역솔남(역대급 솔로 남자 아티스트)’이라는 영광스러운 수식어를 얻어내기에 이르렀다. ​​​​​​​
대중을 유혹하는 태민의 매력 포인트는 무엇일까. 이번 앨범처럼 뱀의 유혹, 선악과 스토리는 K-POP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소재다. 그럼에도 태민의 선악과가 매력적인 이유는 선을 넘을 듯 말 듯 한 아슬아슬한 연출에 있다. 태민은 내추럴한 스타일링으로 소년미를 강조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상체가 노출되는 크롭 상의, 옷 안으로 손을 넣는 퍼포먼스 등으로 보는 이까지 아찔하게 하는 긴장감을 준다. 또 ‘금단의 열매에 손을 댄 소년’이라는 설정은 어떤가. 금기에 소년의 미숙함과 연약함이 더해져 말 그대로 ‘Guilty’ 하다. 이런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태민이 ‘괴도’부터 지켜온 연출 포인트다. 죄책감이 들지만 유혹적이고, 마이너하지만 중독적인 태민만의 아이덴티티와 클리셰는 금기를 어기더라도 맛보고 싶은 선악과 그 자체다.
 글 | 강유리   에디터 | 민유빈 박유빈
발행 | 스브스케이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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