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비트의 역습 – 드럼 앤 베이스, UK 개러지, 저지 클럽
2023년의 케이팝은 장르적으로 풍성했던 해였다. BTS의 멤버들은 솔로 활동을 통해 신스팝, 콘템포러리 R&B, 재즈팝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였으며 FIFTY FIFTY나 트와이스, 그리고 프로미스 나인과 같은 걸그룹들은 누디스코 장르를 통해 레트로 음악은 아직 유효하다는 것을 알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올 한 해 가장 눈에 띄었고, 새롭게 떠오른 장르들이 있다면 드럼 앤 베이스, UK 개러지, 저지 클럽이 아닐까 싶다. 생소한 이름들이었겠지만 의외로 역사가 길며 모두 브레이크비트라는 장르에서 기반한 음악들이라는 것은 흥미롭다. 이 브레이크비트와 파생 장르들은 각각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2023년 케이팝 곡들 중 어떤 곡들이 이 장르에 속하는지 함께 살펴보자.
파티를 위해 생겨난 음악. 브레이크비트 (Breakbeat)
쉽게 설명하자면 브레이크비트는 ‘브레이크 타임’ 때 ‘브레이크 댄스’를 출 때 나오는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브레이크 타임 자체는 예전부터 재즈를 비롯한 여타 흑인 음악에서 드럼 솔로 파트로 존재해왔지만, 미국의 DJ Kool Herc가 본격적으로 이 파트를 반복해 곡으로 만들어 파티에서 사용한 것이 그 기원이다. 이름은 몰라도 무조건 들어보았을 ‘아멘 브레이크’나 ‘Funky Drummer 브레이크’가 대표적인 브레이크이며, 드럼 솔로에서 기원했기에 드럼의 강한 사운드와 리듬이 장르의 핵심이 된다.
이러한 음악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까지 큰 인기를 끌었고, 이 비트에서 춤을 추던 사람들은 Break Dancer가 됐으며, (다만, 이것이 B-Boy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들은 MC라 불리게 되며 힙합을 낳기도 한다. DJ들은 템포를 바꾸거나 다른 장르와 섞는 등 여러 시도를 하게 되는데, 여기서 새로운 장르들이 생겨난다.
벅차오르는 사운드. 드럼 앤 베이스 (Drum and Bass)
브레이크비트에 레게와 같은 장르들이 결합되며 정글이라는 장르가 탄생했고, 그 정글에서 속도를 올리고 랩과 레게의 요소를 덜어 한결 가벼워진 음악이 드럼 앤 베이스 장르이다. 1990년대 중후반에 전성기를 맞았던 이 장르는 PinkPantheress 이후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2021년 ‘Break It Off’를 시작으로 ‘Passion’, ‘I Must Apologise’와 같은 곡이 큰 인기를 얻더니, 2023년에는 케이팝에서도 본격적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뉴진스의 ‘Zero’를 시작으로 샤이니의 ‘The Feeling’, 트리플에스의 ‘초월’, 뉴진스의 ‘Supershy’, 제로베이스원의 ‘In Bloom’ 등이 모두 드럼 앤 베이스 계통의 음악들이다. 특유의 드럼과 빠른 BPM 속에서 벅차오르는 감정과 복고적인 향취를 낼 수 있음과 동시에 보컬이 돋보이기 좋아 많은 사랑을 받지 않았나 싶다.
차분하면서도 감각적인 장르. UK 개러지 (UK Garage)
미국 하우스 장르 중 하나였던 개러지 하우스가 영국 씬의 브레이크비트를 만나 생긴 장르이다. 기존 브레이크비트가 가지고 있는 마초적이고 폭력적인 분위기를 싫어한 이들이 주축이 됐기에 보다 차분하고 감각적이며, 역시 90년대 후반이 전성기였지만 영국의 일렉트로니카 듀오 Disclosure 덕에 2010년대에 다시 유행하기 시작하며 케이팝에서도 간접적으로 꾸준히 쓰이던 장르이기도 했다. 트와이스의 ‘Feel Special’, F(x)의 ‘4 Walls’나 샤이니의 ‘View’에서 부분적으로 UK 개러지 사운드를 찾을 수 있다.
최근 들어 더욱 인기를 끈 이유는 복고적임과 동시에 차분한 느낌까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복고 감성 자체는 드럼 앤 베이스와 동일하지만 마초적이지 않은 만큼 더 간결하고 부드러우니, 기타나 전자 피아노를 섞어 팝이나 R&B적인 느낌을 내기에도 제격이다. 정국의 ‘Seven’을 비롯해 엔믹스의 ‘Party O’Clock’, 뉴진스의 ‘Cool With You’와 르세라핌의 ‘Perfect Night’ 등이 UK 개러지 장르의 곡이다.
무엇과 섞어도 찰떡, 저지 클럽 (Jersey Club)
뉴진스의 ‘Ditto’를 통해 ‘쿵 쿵 쿵쿵쿵’ 하는 장르라고 모두가 알게 된 장르이다. 시작은 하우스와 브레이크와의 결합이었다. ‘쿵 쿵 쿵쿵쿵’ 하는 리듬의 브레이크가 자주 활용되고 장르화되며 볼티모어클럽이라 불렸고, 거기서 더 팝적이고 춤추기 좋게 변화한 장르가 저지 클럽이다. 해외에서는 Lil Uzi Vert의 ‘Just Wanna Rock’을 시작으로 PinkPantheress의 ‘Boy’s a Liar’, Drake의 ‘Sticky’, Ice Spice의 ‘in ha mood’와 같은 곡이 큰 반응을 얻었으며, 그 후 한국에서도 ‘Ditto’를 시작으로 유행하기 시작한다. 뉴진스의 ‘ETA’, 르세라핌의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 오드아이써클의 ‘Air Force One’, 세븐틴의 ‘손오공’이 대표적이다.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특유의 리듬을 골자로 다른 장르와 섞기 좋아 활용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일 것이다. ‘Ditto’는 콘템포러리 R&B와 결합해 복고적이면서 감성적인 무드를 형성했으며, ‘손오공’은 아프로비츠와 힙합 비트를 함께 사용하며 강렬하고 거친 이미지를 구현해냈다.
브레이크비트의 끝판왕. [Get Up]
뉴진스의 [Get Up] 앨범은 드럼 앤 베이스, UK 개러지와 저지 클럽을 절묘하게 섞어낸 대표적인 앨범이다. ‘New Jeans’에서는 UK 개러지로 곡을 이끌어가다가 후렴구에서는 저지 클럽 장르로 전환하기도 하고, ‘Super Shy’에서는 첫 후렴구는 드럼 앤 베이스이지만 1절과 마지막 후렴구에는 역시 저지 클럽이 등장한다
강렬한 사운드 덕에 자칫 뉴진스와 어울리지 않았을 수도 있는, 또 대중들에게 낯설었던 브레이크비트 장르를 성공적으로 어필할 수 있었던 비결은 ‘미니멀함’과 ‘복고 감성’을 버무리는 것이었다. 시끄럽지 않은 몽글몽글한 건반과 90년대스러우면서도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멜로디를 브레이크비트와 조화를 이루게 했고, 이를 위해 Erika de Casier 같은 싱어송라이터들과 함께 협업하기도 했다. ADOR의 대표 민희진은 한 인터뷰에서 “기존 케이팝이 지향해온 전형적인 멜로디 전개 방식이나 고음 등에 거부감이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음악관이 본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된 것이다. 그 결과 [Get Up]은 ‘누구나 편하게 들을 수 있으면서도 새로운 사운드로 가득 찬’ 케이팝 명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무한히 확장하는 케이팝 장르
브레이크비트 장르의 열풍은 그만큼 케이팝이 장르적으로 열려 있고 발전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국적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곡가들과 협업하며 해외의 유행하는 사운드를 바로바로 캐치해 가져올 수 있었고, 그 속에서 친숙한 사운드와 함께 버무리며 기존 국내 팬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어느 날 테크노나 트랜스 음악이 갑자기 다시 떠올라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게 됐다. 내년에는 어떤 예상치 못한 새로운 장르가 우리 귀를 즐겁게 해줄지, 한껏 기대를 부풀어 본다.
글 | 이승훈 에디터 | 민유빈 박유빈
발행 | 스브스케이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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