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줄기를 바꾼 이지리스닝
지난 2022년은 물줄기가 바뀐 해였다. (여자)아이들이 ‘TOMBOY’로 최고의 성적을 거두고, 에스파가 ‘Girls’로 걸그룹 최초 음반 초동 판매량 밀리언셀러를 달성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걸크러쉬와 세계관이라는 성공 공식은 굳건해 보였다. 그러나 친근하고 청량한 이미지의 뉴진스가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이지리스닝이라는 컨셉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올 2023년은 뉴진스, 아이브 등 이지리스닝을 추구하는 걸그룹들이 정상을 차지했다. 피프티피프티, 하이키 등 대중성을 지향하는 중소돌들의 신화 역시 돋보였다. 바야흐로 이지리스닝이라는 새로운 성공 공식이 자리 잡은 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이지리스닝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짚어보려고 한다.

심플 is the 베스트
이지리스닝은 문자 그대로 듣기 쉬운 음악을 의미한다. 무언가를 해석하기 위해 복잡하게 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이 직관적으로 ‘좋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최근 래퍼 릴러말즈가 바이올린을 연주한 영상에서 ‘잘하는 것’인지 궁금해하는 댓글 반응들이 적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클래식처럼 순수하게 예술을 추구하는 장르는 연주자가 얼마나 고도의 테크닉을 구사하는지가 좋은 음악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음악이 대중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음악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음악을 향유하는 방식 중 하나지만, 가볍게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높은 진입 장벽 자체가 복잡하고 피곤하게 느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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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크러쉬와 세계관이 올린 장벽
그러나 걸크러쉬와 세계관을 거치면서 케이팝의 진입 장벽도 못지않게 높아졌다. 과거 2NE1이 자존감 높은 이미지로 여성 팬들에게 동기부여를 제공하면서 시작된 걸크러쉬는, 블랙핑크가 세련된 이미지로 ‘멋있는 언니’에 대한 동경을 극대화하면서 정점을 보여주었다. 이후 걸크러쉬를 표방하는 컨셉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고 많은 걸그룹이 여성 팬들을 확보하는데 성공했지만, 설득력과 진정성이 부족한 걸크러쉬들은 본의 아니게 대중들에게 공감이 아닌 피로감을 주게 되었다. 특유의 강한 비트만 남아 오히려 개성을 덮어버린 모양이었다.
세계관 역시 피로도가 누적된 상태였다. 과거 엑소가 초능력을 선보이면서 가능성을 제시한 세계관은, BTS의 화양연화 시리즈를 거치면서 증명에 성공했다. 세계관은 충성도 높은 팬들에게 깊이 있는 몰입감과 복합적인 재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분명했다. 그러나 개연성과 때깔이 부족한 세계관들은 아쉽게도 대중들과 거리감을 만들었다. 복잡한 입덕 절차는 오롯이 대중들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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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중들을 향한 이지리스닝
반면 이지리스닝은 간단명료했다.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와 익숙한 스트링 사운드는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간 높은 진입 장벽으로 인해 한 발치 물러선 대중들은 다시금 케이팝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덕분에 2023년을 알리며 나온 뉴진스의 ‘Ditto’는 올 한 해 꾸준한 사랑을 받았고, 아이브는 'I AM'으로 전 세대를 사로잡은 그룹으로 자리매김 했으며, 정국은 ‘Seven’으로 빌보드 차트 1위를 석권했다. 그렇다면 이를 바탕으로, 이지리스닝이라는 새로운 성공 공식은 과연 어떠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살펴보자.

음악을 쉽게 설명하는 방법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는 음색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국의 ‘Seven’에서는 특유의 미성이 부드러운 진행을 이끌면서 곡에 안정감을 주었다. 아티스트의 이미지와 전달하는 메세지 모두 꽤나 강렬했지만, 포근한 음색이 중심을 잡으면서 전체적인 밸런스를 유지한 곡이었다.
아는 맛이 무섭다는 말처럼 귀에 익숙한 사운드는 친절하게 들린다. 뉴진스의 ‘Ditto’는 아련함이 돋보이는 복고적인 사운드를 기반으로 어딘가 인디스럽기도한 따뜻한 감성을 연출하면서, 겨울이라는 계절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녹였다. 특히 이전에 보여준 여름의 청량함과 대비되어 더욱 매력적이었다.
포근한 음색과 아련한 복고풍이 분위기를 연출한다면, 방점을 찍는 것은 중독성 있는 멜로디라고 할 수 있다. 아이브의 ‘I AM’은 후렴구에서 간결한 리듬을 바탕으로 통일감 있는 멜로디를 반복하면서 무의식적인 흥얼거림을 유도했고, 이는 직관적인 즐거움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귀에 꽂히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곡이었다.

아이돌 컨셉의 변화
컨셉이라는 것이 본래 그런 듯하다. 어느 순간 피로감이 느껴지면 자연스럽게 반대되는 것에 끌리게 된다. 마치 최근 유행하는 ‘마라탕후루’의 맵단 조합 같은 느낌이랄까. 걸크러쉬와 세계관을 마라맛에 비유한다면, 이지리스닝은 단맛에 비유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올해는 이지리스닝이 대중성을 불러일으키면서 새로운 성공 공식으로 자리 잡았지만 내년에는 또 다른 맛이 주목받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다양한 맛을 함께 즐길 때 비로소 복합적인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걸크러쉬와 세계관, 그리고 이지리스닝 모두 골고루 즐기면서 새롭게 다가올 컨셉을 반가운 마음으로 함께 기다려보자.

글 | 이관우   에디터 | 민유빈 박유빈
발행 | 스브스케이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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