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사이드 르윈 Inside Llewyn Davis>의 주인공 르윈 데이비스는 무명의, 무일푼의 포크 뮤지션이다. 집은커녕 옷도 없어, 겨울에 코트도 없이 지인들 집을 전전하는 주인공. 일은 풀릴 기미가 안 보이고 어떤 날은 이유 없이 취객에게 얻어 맞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일상을 견디는 이유는 꿈 – 뮤지션으로서 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빛나는 꿈은 아니어도 우리 모두에게, 필자에게도 작지만 꿈은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대부분 제자리에서 공회전을 한다. 위를 보고 걸으려 애쓰지만 피로해진 고개는 자꾸 내려오기 일쑤. 그럴 때마다 생각하곤 한다. 꿈이란 건 마치 행성과 같아서, 클수록 강한 힘으로 나를 붙들어 놓는 것 같다고. 우리는 그 크고 강한 빛에 현혹되어 쉬이 가까워지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멀어질 용기도 없이, 작은 위성이 되어 맴도는 것 아닐까라고. 학창시절 배운 물리 이론 같다. 앞으로 향하고 있지만, 내 궤적은 원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누군가는 그 잔혹한 평형 상태를 깨고, 한발짝 목표에 가까워지곤 한다. 그것은 누군가 더 센 힘으로 당겨준 덕분일 수도 있고, 지금의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힘껏 발돋움을 한 결과일 수도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 <LOUD>는 데뷔라는 꿈을 공전하던 별들이 꿈에 도달하는 이야기였다. PSY라는 월드스타의 강한 인력으로 TNX가 된 여섯 소년들은 어느덧 2년차, 2집 아티스트가 되었다. 
TNX를 지탱하는 맏형 라인 – 경준과 태훈을 만나보았다.
1. 공성전
브스케이팝) 1집 이후, 9개월 공백 끝에 더블 타이틀로 컴백하셨어요. 하이틴 무드가 두드러지더라구요. 1집과 색깔이 너무 달라져서 놀라는 분도 계셨습니다.
경준) 저희가 데뷔 때부터 지향했던 방향이 감성과 강성이 공존하는 퍼포먼스였어요. 저희 동 세대와 함께 용기를 내서 도전하고, 극복하고,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죠. 그 도전의 대상은 저희 각 멤버들의 한계면서, 저희 세대 앞에 있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였죠.
태훈) 그렇게 1집은 강성, 강함을 표현하려고 했다면, 이번엔 감성적인 부분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극과 극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아직 TNX 만의 색을 찾아가는 길이라 생각해요.
이것이 2년차 아이돌의 관록일까. 너무나도 능숙하고 빈틈 없는 답에 조금 당황했다. 보다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살짝 당겨 보기로 했다.
스브스케이팝) 도전이란 키워드를 들으니 1집 타이틀곡 <비켜>가 생각납니다. 감시자들로부터 탈출하려는 TNX의 반항적인 무드를 볼 수 있었어요. TNX의 도전 대상은 ‘싸이 키즈’라는 프레임일까요?
태훈) 프레임일 수도 있지만, 저희에겐 변함 없이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에요. 대표님께선 항상 저희가 독립된 아티스트로서 성공하길 바라시거든요. <비켜> 뮤직비디오에서 탈출하려는 대상은, 저희 멤버들 각자의 한계라고 생각해요. 저희도 아직 부족하지만, 아티스트로서 보여드릴 수 있는 모습과 열정들을 끌어내기 위해 항상 연구하고 있어요.
여전히 완벽하고 빈틈 없는 답변. 마치 함락된 적 없다는 반지의 제왕 속 요새 같다. 공성전을 하는 느낌에 이번 인터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피알오가 되기 이전, 일반인 이었을 때 이들은 어떨까.
2. 곡선으로 달린 소년, 직선으로 달린 소년
지금은 같은 팀에서 같은 지붕을 받치는 기둥들이지만, 둘의 출발은 다소 달랐다고 한다
스브스케이팝) 태훈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음악인을 꿈꿨어요. ‘다소 빠르다’는 생각도 드는데, 태훈이란 사람은 직관적인 편일까요?
태훈) 초등학교 수학여행에 가서 장기자랑을 하게 됐는데, 그때 무대 위에서 느꼈던 감정들 때문에 아이돌이라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일찍부터 하나의 꿈만을 갖고 노력했으니 직관적인 부분도 있는 게 맞네요 (웃음).
스브스케이팝) 부모님의 반대는 없으셨나요?
태훈) 부모님께선 크게 반대하시는 것 없이, 함께 학원도 찾아보면서 많이 응원해주셨어요. 하지만 나중에 알았는데, 제가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을 때 어머니가 걱정되는 마음에 눈물을 보이셨다고 하시더라구요.

스브스케이팝) 반면에 경준씨는 어렸을 때 꿈이 외과의사였다는 게 놀라웠어요. 원래 공부를 잘하셨던 편인가요?
경준) 한국 나이로 5살 때 호주로 넘어가서, 10년 동안 유학 생활을 했어요. 호주에 있을 때는 (조금 민망한 듯 웃었다) 나름 공부를 잘 했던 편이고, 수학, 과학, 역사를 좋아하던 학생이었어요. 그 중 특히 수학을 좋아했는데, 초등학생 때는 올림피아드 대회에 나가기도 했어요.
어머니께서 범죄/스릴러 장르의 드라마를 좋아하셨는데, 어릴 때 어머니와 함께 봤던 드라마에서 수술하는 장면을 보면서 흥미를 느꼈고 인체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외과 의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뒤로는 공부도 더 열심히 하게 되었고, 놀 때도 ‘Operation Skill Game’ 같은 걸 하면서 놀았습니다.
△ Operation Skill Game. 몸의 다른 부위를 건드리지 말고, 병의 원인을 조심스럽게 꺼내야 한다
스브스케이팝) 의사를 꿈꿨던 소년이 돌연 연습생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돼요. 쉽지 않은, 큰 폭의 진로 변화였어요.
경준) 한국에 오면서 적응 문제를 크게 겪었어요. 10년간 살았던 호주를 떠나서 15살에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오히려 ‘낯선 나라’에 온 느낌이었어요. 호주를 떠나기 싫기도 했고, 한국어도 어려웠고, 학교에 적응하느라 공부에 대한 자신감도 떨어졌어요. 제 미래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하던 시기였어요.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로 캐스팅을 받게 되어서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춤을 배우러 아카데미도 다니고, 회사에 들어가서 연습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차츰 연예인이라는 꿈이 생기더라구요. 그 때부터 점차 한국에서의 생활에도 적응하게 됐어요. (‘부모님의 반대는 없으셨나요?’) 부모님께서는 제가 한국 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저의 새로운 꿈을 지지해주셨습니다.
사실, 저는 기억 못하지만 어머니가 말씀해주신 일화가 있어요. 아주 어릴 때 한국의 한 가게에서 어머니와 제가 우연히 박진영 프로듀서님을 마주쳤었는데, 나중에 꼭 오디션을 보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둘은 십 수년의 시간이 흘러 <LOUD>에서 멘토와 멘티로 만나게 된다. ‘넌 케이팝을 할 운명이야’라는 것처럼.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정작 이들은 시작부터 많이 위태로웠다는 걸.
3. LOUD
스브스케이팝) 피네이션의 첫번째 퍼포먼스 <WIN>은 아직도 기억에 나요. ‘피네이션의 색깔은 우리가 만들어간다’는 선언 같았습니다.
경준) 사실 처음 준비하려는 무대는 다른 곡이었어요. 그런데 저희 멤버들도,, 퍼포먼스 담당 선생님도 ‘WIN’이 저희 색깔을 더 잘 나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WIN’으로 준비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하기 위해 연습한 영상을 촬영해서 회사 분들께 보여드렸죠.
태훈) (당시를 생각하며 웃었다) 뭐든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처음 저희를 보여드리는 무대이다보니, 회사 모두가 엄청 고민해서 준비했어요.
스브스케이팝) 피네이션은 멋진 출사표를 던졌지만, 두 분의 출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공통적으로 ‘로봇 같다’, ‘기계적이다’는 평가를 들었어요. 대표님께서도 무대 전부터 특히 두 분을 걱정하셨고요.
경준) 소속사 첫 번째이자 제일 오래된 연습생이기도 하고, 맏형 라인인만큼 잘 해냈어야 했죠. 하지만 그러지 못해서 대표님께서도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태훈) 사실 감정 표현이 부족하다는 건 LOUD 참가 전, 월말 평가 때부터 계속 들어왔던 피드백이긴 했어요. (다소 머뭇거리다 입을 떼었다) 사실 연속해서 매 평가마다 좋지 못한 피드백을 받았다 보니, 이 길에 대한 확신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어요. LOUD 전 월말 평가를 마친 후에 아버지 차를 타고 퇴근하면서 ‘어쩌면 더 이상 음악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나요.
스브스케이팝) 피드백을 강하게 받으셨을 것 같아요.
경준) 대표님께서 “언제까지 땅만 보고 할 거야”라고 말씀해주셨던 게 기억 나요. 제가 원래도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기도 하고, 표현에 서투른 부분이 있었어요. 많이 답답했지만, 고치려고 정말 많이 노력을 했고 이제는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잘 전달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 LOUD 초반의 PSY 대표님 인터뷰. 안타까움이 보인다.
스브스케이팝) 대표님은 많이 무서우신 편인가요? LOUD에서 ‘PSY 프로듀서님 무서우세요?’ 란 질문에 태훈씨가 ‘때마다 다르다’고 하셨는데
태훈) 제가 생각하는 대표님은… 과묵하시고, 차분하시고, 냉철하신 분이에요. 그래선지 침묵하실 땐 가끔 무서워 보일 때가 있지만, 저희에게 많은 애정을 쏟아주시고 너그러우신 대표님이에요.
경준) 처음 대표님을 뵀을 때, ‘와 화면이랑 실물이 진짜 똑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웃음) 엄청 에너제틱하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굉장히 차분하신 편이라 의외였던 기억이 나요.
태훈) 대표님께서 주시는 피드백은 가끔 날카롭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하지만 결국 그 피드백이 저를 더 성장시키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 생각했어요. 항상 부족한 저희를 이끌어 주셨고, 저희 스스로 깨닫고 변할 수 있게 끝까지 기다려 주셨어요.
경준) 저 같은 경우도, 스스로 멘탈적인 부분을 많이 고민하고 고쳐보려고 했어요. 원래 성격이 어떠하든, 무대 위에서는 프로다운 애티튜드, 표현을 해야 한다고요. 민망해하는 것도 사치라는 생각이랄까요. 다행히 점차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고 점차 자신감을 얻었어요.​​​​​​​
둘의 말을 듣고, 최근에 본 스타 프로게이머의 인터뷰가 생각 났다. 슈퍼스타가 된 지금에도, 오히려 그러하기에 도덕적으로 모범을 보이기 위해 타고난 성격까지 바꿨다고 했다. ‘경기력보다 성격을 바꾸는 게 쉽다’면서.
각자 연습생을 오래 했다고 하지만, 무대에 올라본 적 없는 아마추어들이었다. LOUD는 아마추어들이 프로가 되는 과정이었고, 벼랑 끝에서 두 사람은 더 치열하게 다듬어졌다. 그리고 끝내 데뷔조에 안착하게 된다.

스브스케이팝) TNX라는 이름은 언제 처음 듣게 되었어요?
경준) 대표님께서 멤버들을 다 모아놓고 TNX라는 이름으로 데뷔한다고 처음 알려주셨어요.
태훈) TNX 말고도 다른 이름 후보들이 있긴 했죠. 저희가 평소에도 자주 말해서 팬들도 다 알고 계신 이름인데, 회사 이름이 P로 시작하다 보니 피닉스, 피존 같은 이름들이 었었어요.

세상에. 피존이라니.

스브스케이팝) 초반엔 멤버들끼리 조금 어색했을 것 같기도 한데,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나요?
태훈) 되게 많은 걸 하면서 친해지려고 했어요. 풋살, 볼링 같은 운동도 하고.
경준) 숙소에서 영화도 같이 봤고요 (웃음)
태훈) 아, 저희끼리 근교로 여행을 간 적 있는데, 너무 좋은 기억으로 남아서 언젠가 또 멤버들과 여행을 가고 싶어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진행됐던 인터뷰였다. 둘의 표정에 피곤이 어른어른 내려앉고 있었는데, 멤버들 얘기가 나오자 생기가 돌아오는 게 보였다.
4. 이제 하나를 지났을 뿐이다
스브스케이팝) 2집 얘기로 다시 돌아가보면 감성을 표현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어떻게 보면 두루뭉술한 표현 같은데, 그 감정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태훈) (조금 조용히 고민을 했다) 저는 나름대로 치열했던 연습생 시절과 LOUD를 통해 느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컨셉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함께 그 시절을 보냈던 저희 멤버들 생각이 가장 많이 나더라구요. 생각해보면 저의 10대의 청춘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이 바로 저희 멤버들이기도 하고, 멤버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버틸 수 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저희도 그렇지만 모든 분들께서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고 계시다고 생각하는데, 저희 노래가 치열함 속에서 잠깐의 여유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브스케이팝) 멤버들에 대한 애정이 커보이는데, 혹시 지면을 빌어 멤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태훈) 지금껏 잘해줘서 너무 고맙고, 서운할 때도 있을 거고, 힘들고 답답할 수도 있지만 모두가 처음 겪는 일들인 만큼 서로 의지하면서 잘해보자 멤버들!
경준) 항상 고맙고, 우리 앞으로도 잘해보자.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최근에 느끼는 불안을 물어봤다. 이전과는 다른 자리에서, 새로운 것들을 본 만큼 새로운 고민 거리가 생기지 않았을까.
태훈) 아직은 경험을 쌓아 가는 단계이기 때문에, 두려움이나 걱정보다는 설레임이 더 큽니다.
경준)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고 성장에 대한 욕심이 있습니다. 좋은 압박감이라고 생각하고, 매일 더 나은 제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최후의 최후에서, 빈틈 없는 아이돌의 모습이 나왔다.

한창 연습을 하고 서바이벌에 몸을 맡겼을 때엔 둘에게도 데뷔가 종착역처럼 보였을 것 같다. 하지만 그곳은 중간역도 아닌, 새로운 시작점이었다. 태훈의 말처럼, 이제 TNX는 TNX만의 음악을 찾는 철로를 걷고 있다. 어떤 때는 앞장 서서 세상에 대한 분노를 가감없이 터뜨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옆에 서서 위로를 하기도 한다. 좌충우돌처럼 극과 극을 달리는 것 같지만 이들의 여정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분명하다. 언제나 ‘지금’을 향하고 있다는 것. 지금 옆에 있는 멤버들과 오늘을 살아가는 동세대를 직시하고 있다.
TNX가 자신들의 음악을 완성하는 날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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