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ma, 서사와 인물의 미학
이따금 인물의 파란만장한 일생 혹은 특정한 사건을 빗대 “마치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보통 이러한 비유가 붙는 이야기에서는 드라마의 큰 특징인 두 가지의 조건을 찾아볼 수 있다. 이목을 끌만한 충분한 서사가 존재하는가, 그리고 인물의 행동 따위가 매력적인가가 바로 그것이다. 이 조건들을 만족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한 편의 드라마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출처 : SM Entertainment

마침 [Drama]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사표를 던진 아티스트가 있다. 4세대 걸그룹의 대표주자, 에스파가 그들이다. 기존에도 “광야”로 대표되는 서사와 범접할 수 없는 특유의 음악성을 통해 아티스트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하던 그들이 선보이는 새로운 드라마는 어떤 모습일까?

광야 저 너머로
에스파의 지난 행보들은 마치 대중에게 자신들이 광야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중이라는 것을 전달하려는 듯했다. 뮤직비디오나 콘텐츠에서 세계관과 관련된 모습들이 빠지거나 옅어지는 모습을 보였으며, 음악 차원에서 세계관과 관련된 가사가 빠지거나 기존 음악과 다른 부드러운 사운드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에 관련하여 대중 들은 때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고, 새로운 모습을 반기기도 하면서 다음 음반에 대한 기대감을 각기 다르게 나타내었다.

익숙한 쇠맛과 새로운 서사
그리고 발매된 [Drama]는 위 두 반응을 보였던 대중을 모두 충족시키며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모습을 보였다. 음악적으로 에스파는 본인들의 색채에 가장 가까우며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쇠 맛”을 택했다. 섬뜩할 정도로 거칠고 어딘가 엇나간 듯하게 느껴지는 금속성의 사운드는 곡의 전반으로 ‘Savage’에서부터 이어왔던 “쇠 맛”을 깊숙이 퍼뜨린다. 나아가 후렴부에서의 신시사이저와 음절을 끄는 방식으로 소화하는 보컬은 곡의 거친 질감을 보조하기도 또한 강화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인다. 타이틀곡 ‘Drama’는 결과적으로 대중에게 그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에스파의 “쇠 맛”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한 편으로 대중에게 전달되는 서사 차원에서 에스파는 새로운 모습을 보인다. 그동안 그들의 이야기는 대중에게 SMCU(SM Culture Universe) 세계관을 전달하는데 주요한 목적을 두었다. 그러나 이번 음반 [Drama]에서 그 목적을 내려 놓고 한 발짝 물러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Drama’의 뮤직비디오는 다양한 영화들을 오마주하는 형식으로 외관을 장식하였다. 이는 “광야”를 주요한 배경으로 사용하고 스토리에서 세계관적 요소를 녹여내던 에스파의 기존 뮤직비디오들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특히 <매트릭스>, <킬 빌> 등 다양한 영화의 장면들이 오마주 되었는데, 이 영화들은 주로 질서나 세계에 저항하며 주인공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의미심장하게도 ‘Drama’의 “나로 시작되는 드라마”라는 가사와 일맥상통하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해서 에스파가 SMCU를 완전히 버린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상기한 MV 역시 팬덤 사이의 해석에서 기존 세계관의 요소들이 얽혀 있음이 밝혀지기도 하였고, 에스파의 공식 유튜브에서 프로모션 차원으로 진행된 3부작 에피소드 <WHO VISIT THE VILLA?>의 2번째 EP “Who are you?”에서는 기존 에스파의 세계관을 각색하여 제작하였음을 명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부가적 요소로 기존 세계관이 사용되었지만, 대중이 바라보는 첫인상에서 분명 SMCU의 빛깔이 상당하게 빠져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음악은 공고하게, 스토리는 새롭게

이미지 출처 : SM Entertainment

결과적으로 에스파의 [Drama]는 그들의 음악적 정체성은 공고히 다지고, 에스파만의 스토리는 새롭게 써내려 가겠다는 것을 천명한 음반에 가깝다. 경쟁 아티스트들이 감히 벤치마킹할 수 없는 확실한 경쟁우위인 “쇠 맛”을 꾸준하게 가져가며 피치 못할 사정으로 두고 가야 할 세계관은 서서히 내려놓는 모습이다. 급격한 변화는 결국 그에 걸맞은 반응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에스파의 [Drama]는 세계관의 필수 불가결한 변화를 “나로 시작되는 드라마”라는 영리한 기획으로 맞받아친 그들의 출사표에 해당할 것이다.

글 | 서동범   에디터 | 민유빈 박유빈
발행 | 스브스케이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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