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이 내려앉는 겨울이 되면 첫사랑처럼 아련하게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영화 감독 이와이 슌지가 본인의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한 일본 로맨스 영화 <러브레터>다. 1995년 개봉한 <러브레터>는 홋카이도 오타루의 설경을 배경으로 사춘기 시절, 풋풋하고 서투른 첫 사랑의 감정선을 세심하고 아련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설원에서 세상을 떠난 연인에게 お元気ですか!! 私は元気です!! (오겡키데스카, 아타시와 겡키데스!)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는 장면은 단순히 슬프고 그리운 첫사랑 영화 이상의 여운을 남긴다.
2024년의 초입, RIIZE(라이즈)는 멜로 영화 같은 감성으로 자신들만의 첫사랑을 노래하고자 한다.
RIIZE만의 그때 그 시절 감성
 라이즈는 아련하고 그리운 첫사랑의 감성으로 [Love 119]를 가득 채운다. 2005년 방영된 그때 그 시절 드라마 <쾌걸춘향>의 OST인 ‘응급실’을 샘플링한 것에서부터 이러한 감성을 엿볼 수 있다. 인트로부터 등장하는 라디오 노이즈와 원곡 ‘응급실’의 한 구절, 이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감미로운 피아노 리프와 비트감 있는 드럼 라인의 대비는 레트로함과 신선함, 두 가지를 모두 잡아낸다. 원곡을 알고 있는 세대에게는 그 시절의 기억을, 그렇지 않은 세대에게는 새로움을 주는 것이다.
비주얼 콘셉트에서는 일본 멜로 드라마의 감성을 더하는데, 아날로그 핸드폰 그래픽 디자인의 프로모션 페이지, RIIZE Love 119 Mail Box에서 공개된 콘셉트 포토와 영상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학교, 체육관, 전철 등 일본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배경과 ‘댄스 동아리 라이즈와 발레부 여자 주인공’이라는 설정은 그때 그 시절, 우리가 꿈꿨던 첫사랑의 모습을 그려내는 듯 하다. 일본식 교복과 떡볶이 코트에 자전거, 줄 이어폰 등의 소품으로 더한 디테일은 멤버 전원이 2000년대생인 라이즈가 담아 냈음에도 어색하지 않고 그리운 2000년대 멜로 감성을 완성했다.
한 편의 멜로 영화 같은 ‘Love 119’
‘Love 119’ 뮤직비디오는 라이즈의 첫사랑이 단순히 설레고 그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드라마타이즈 형식의 뮤직비디오는 은유적 소재들로 스토리를 표현하는데, 여자 주인공의 죽음을 상징하는 흰 나비와 함께 가장 중요한 소재로 ‘인공위성’이 등장한다.
앤톤의 단어장 속 영어 문장(A satellite is an object in space orbits around a bigger object)은 인공위성의 뜻을 설명하는데 로맨스 텍스트 속 인공위성은 짝사랑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좋아하는 사람의 주변을 맴도는 모습을 천체 주위를 회전하는 인공위성에 비유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원빈이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떨어지는 세 번째 위성은 ‘사랑의 실패’를 표현하는 연출로 이해할 수 있다.
 문자 메시지도 ‘Love 119’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다. 1월 5일 6시, 사랑을 예고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메시지는 마음을 먹었다면 전달해야 한다는 조언을 던지기도 한다.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의 시간과 장소까지 알려주며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은 누구일까?
 뮤직비디오에서는 이에 대한 실마리가 등장한다. ‘나는 미래의 너야.’, ‘나 대신 전해 주길 바란다’는 메시지에서 우리는 문자 메시지의 발신자가 여자 주인공의 죽음, 첫사랑의 실패로 후회하고 슬퍼했던 미래의 나, 미래의 라이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뮤직비디오의 시점 이전, 두 번의 실패가 있었음에도 라이즈는 마음을 전달하지 못했다. 서툴기만 한 첫사랑의 감정에 쉽게 용기를 내지 못했고, 여자 주인공을 살릴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에 멤버들은 모두 눈물을 흘린다. 이번에도 라이즈는 후회하며 아픈 기억을 영원히 잊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프고 슬퍼한 만큼 라이즈에게는 더 많은 문자 메시지가 쌓일 것이다.
영상 초반부 내레이션은 ‘하나의 발사체에 여섯 개의 위성을 실어 보내는 발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이다. “실패하더라도 다음 발사 시도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는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유의미한 실험이라고 봅니다.” 세 번째 위성은 떨어졌지만, 라이즈에게는 아직 네 번째, 다섯, 여섯 번째의 위성이 남아있다.
끝내 남아있는 사랑의 흔적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첫사랑, 말그대로 처음 하는 사랑은 누구에게나 서툴고 불안정하다. 마음을 전하고자 다짐한 후에도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 속에서 망설이게 되고, 어렵게 꺼낸 말은 생각처럼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첫사랑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실패하더라도 우리에게는 남은 위성이, 다음 발사가 있다. 슬픔과 후회가 쌓이고 쌓이며 서툴기만 했던 우리는 성장한다.
감정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은 성장의 첫 단추가 된다. 연습생 시절 함께 보낸 시간과 추억의 노래 ‘Memories’, 서로 주고받은 영감의 노래 ‘Get a guitar’, 낯선 상대를 향한 솔직한 관심을 표현한 ‘Talk Saxy’까지, 라이즈는 일상의 경험을 영감으로 하는 이모셔널 팝(Emotional Pop) 장르로 자신들의 감정을 기록해왔다. 감정의 기록은 곧 라이즈(RIIZE)라는 그룹명(Rise&Realize)처럼 성장의 시작이며, 꿈을 실현해 나가는 발판이다. 첫사랑의 기억을 담아낸 [Love 119]도 같은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실패와 후회 속에서 더욱 성장할 수 있다는 [Love 119]의 메시지는 또 다른 성장의 시작을 예고한다.

새로운 계절이 오면 겨울동안 쌓였던 눈과 발자국은 사라지겠지만 하얗게 내린 눈을 함께 밟았던 추억과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냥 설레고 아름답지만은 않은 첫사랑. 아련하고 아름다운 설경 속에서 라이즈가 써 내려간 [Love 119]는 그리운 첫사랑의 흔적처럼 끝내 남아 우리의 마음 속에 오래 간직될 것이다.
글 | 정한별   에디터 | 민유빈 박유빈 장민
발행 | 스브스케이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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